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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셴도 유키 - 낙원은 탐정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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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회 작성일 26-09-0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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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 전에 발생한 강림은 세상을 완전히 뒤바꾸었다. 어느 나라에서 국왕군이 마을 주민을 학살했다. 한 병사가 쏜 총알이 도망치는 마을 주민을 꿰뚫었을 때 하늘에서 빛줄기가 내려왔다. 흐린 하늘을 가르는 그 빛을 보고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동시에 빛줄기에서 천사들이 튀어나왔다. 천사는 흡사 짐승 같은 몸놀림으로 병사에게 덤벼들어 움직임을 봉쇄했다. 지금과 다름없이 천사의 생김새는 평소 인간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괴물 같았으므로 습격당한 쪽은 기괴한 원숭이에게 붙잡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병사를 제압한 천사가 탁한 빛깔의 날개를 펼쳤다. 그 순간 병사의 발밑이 붉은색으로 환히 빛나기 시작했다. 살이 타는 냄새가 점점 주변에 퍼져 나갔다. 활활 타는 땅에 짓눌린 병사가 몸부림을 쳤지만 천사의 손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다. 잠시 후 불타는 땅에서도 천사가 얼굴을 내밀고 손을 뻗었다. 병사는 고작 몇 초 만에 화염이 일렁이는 땅으로 끌려 들어갔다. 귀를 막고 싶을 만큼 끔찍한 단말마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 천사는 인간의 기대를 절반은 이루어주고 절반은 배신하는 모습으로 강림했다. 천사는 인간의 상상처럼 날개를 가지고 있었지만 조류처럼 깃털이 빽빽이 덮여 있는 게 아니라 뼈대가 불거진 잿빛 날개였다. 그 시접에서 인간은 그 모습에 묘한 혐오감을 느꼈다. 거무죽죽한 혈관이 비쳐 보이는 형상은 박쥐 날개와 비슷했다. 뼈대가 불거진 날개는 팔다리가 이상하게 길쭉한 잿빛 몸통과 연결되어 있었다. 호리호리하니 인간과 비슷한 구조지만 성별을 구분할 수 없는 몸통에는 어째서인지 늘 서리가 내렸다. 천사의 외관에서 제일 두드러지는 특징을 뽑자면 역시 얼굴이리라. 천사의 얼굴은 대패로 깎은 듯이 평평해서 표정은 커녕 눈코입도 존재하지 않았다. 표면은 거울처럼 맑지만 아무것도 비치지 않고 빛조차 반사되지 않는다. 만지면 딱딱한 감촉의 얼굴은 무슨 도구를 사용하든 흡집 하나 나지 않았다. 천사는 자칫하면 악마가 연상될 것처럼 생겼다. 하지만 이 생물을 관측한 인간은 하나같이 이것을 천사라고 불렀다. - 천사의 성질은 순식간에 세상을 바꾸었다. 천사가 살인자를 지옥으로 떨어뜨리는 장면을 본 사람은 아주 조심스러워졌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심판과 나타나지 않는 곳이 없는 천사를 보면 아무리 어리석은 자라도 규칙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명은 죽여도 지옥에 떨어지지 않지만 두 명을 죽이면 지옥행이라는 규칙을. 왜 한 명은 되고 두 명은 안 되는가. 왜 하필 그날 강림했는가. 죄인이 끌려가는 지옥에는 뭐가 기다리고 있는가. 의문은 끊이지 않았지만 인간이 가능한 일은 하나뿐이었다.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천사는 병을 옮기지도 사람을 해치지도 않는다. 그저 인간들이 만든 문명 세계 사이를 둥실둥실 날아다닐 뿐이다. 그들이 부여한 것은 규칙뿐. 한 명은 괜찮지만 두 명을 죽이면 지옥행. 지옥이 얼마나 무자비한지 산 채로 불태워지는 죄인들이 내지르는 끔찍한 단말마의 비명이 알려주었다. 5년 전에 발생한 강림. 빛줄기에서 튀어나와 탁한 빛깔의 날개를 펼쳐 화염으로 인간을 불태워 죽이는 천사. 사람을 한 명 죽이면 내버려두지만 두 명을 죽이면 지옥으로 보내버리는 천사들의 규칙. 천사들이 심판해준다는 생각에 폐지된 사형 제도와 느슨해진 경찰. 한 사람만 죽이고 침묵하거나 다수를 죽이는 무차별 테러로 변질된 범죄 구도. 유명한 패밀리 레스토랑 프랜차이즈 본사 경영자 아들 다카시나 스바루가 납치된 사건을 해결했던 탐정 아오기시 고가레. 성을 바꾸고 아오기시를 찾아와 정의로운 탐정 사무소를 만들어가는 데 보탬을 주었던 친화력 좋은 아카기 스바루. 화이트해커 마야 고노카, 형사를 그만두고 떠돌던 시마노 료타, 대기업 비서였던 시야쿠지이 미쓰키를 탐정 사무소에 끌어들였던 아카기. 정의에 불타오르는 선량한 직원들 덕분에 굵직한 사건을 해결하며 으로 급부상했던 아오기시. 무차별 테러에 사용되는 총기나 살상력이 엄청난 소형 폭탄 펜넬을 추적하던 중 막대한 빚을 지고 자포자기한 남자가 일으킨 차량 충돌 사고에 휘말려 현장에서 사망한 직원들. 불타는 차에 달라붙어 직원들을 구하려는 아오기시를 방해한 천사들. 양손에 심각한 화상을 입고도 후유증 없이 나았던 아오기시. 천사들로 인해 지옥이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음에도 점점 가속화되는 범죄와 잃어버린 정의, 그로 인해 살해당한 직원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포 자기에 빠진 아오기시. 천사와 낙원을 증오하던 중 천사들이 날아다니는 세상의 낙원, 도코요지마섬의 호화 저택에 초대받은 아오기시. 2년 전에 심장 수술을 받고 천사와 낙원에 집착하게 된 도코요지마섬의 주인인 쓰네키 오가이. 쓰네키의 주치의로 아오기시와 오랜 인연을 간직한 냉정한 의사 우와지마 가나타. 책임 의식이 강하고 상냥한 메이드 구라하야 지즈사. 권위를 존중하는 냉정한 집사 고마이 미노루.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으나 게으르고 나태한 골초 요리사 오쓰키 도루. 천사 연구의 제일선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천사를 혐오하는 천국 연구가 아마사와 다다시. 천사 보고서와 낙원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유명해진 민완 기자 호지마 쓰카사. 호신용 물품부터 살상용 무기까지 다양하게 수출하는 기업 소바 홀딩스를 운영하는 소바 유키스기. 쓰네키를 비롯한 권력자들에게 아부하며 비위 맞추느라 정신이 없는 국회의원 마사자키 구루히사. 쓰네키에 대한 폭로 기사를 쓰려다 은행 폭파사건에 휘말려 죽은 기자 히모리 모모오. 히모리 선배의 유지를 받들어 쓰네키를 추적하던 끝에 몰래 섬에 들어온 기자 후시미 니코. 천사 관련 물품과 조각상, 태피스트리를 모아두고 있는 쓰네키. 특이한 소리를 내는 천사를 데려와 아오기시에게 천국이 있는지 물어보라고 강요한 쓰네키. 개인 응접실에서 마사자키, 아마사와, 소바, 호지마와 함께 술을 마신 후 소장하고 있는 단검으로 심장을 찔려 살해당한 쓰네키. 화장대 밑에서 금장식이 달린 감색 만년필을 발견한 아오기시. 고용주가 죽자 요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오쓰키. 후시미와 아오기시를 범인으로 몰아가더니 자기 침실에서 천사 조각상이 들고 있던 가느다란 창에 꿰뚫려 살해당한 마사자키. 테이블에 놓인 빈티지 레드 와인과 안주, 코르크 마개가 꽂힌 은색 오프너. 갑자기 사라진 호지마가 쓰네키와 마사자키를 죽이고 천사에게 심판 당했다고 생각한 우와지마. 우와지마와 달리 천사를 속이고 신을 모독하는 자가 있다고 반발한 아마사와. 아오기시와 와인 창고에서 빈티지 와인을 마시고 뒤에 남은 오쓰키. 말라 붙은 우물과 섬에서 나갈 수 있는 결함 있는 모터보트. 호지마의 방에서 발견한 만년필 모양의 녹음기. 그리고....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믿으며 종교에 의지했던 수많은 사람들 앞에 나타난 기괴한 존재 천사. 한 사람을 죽였을 때는 괜찮지만 두 명 이상 죽이면 화염 지옥으로 끌고 가는 천사를 통해 세워진 이상야릇한 법칙. 불공평한 사회 구조와 불합리한 현실에 불만을 품고 어차피 죽을 거라면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죽이겠다는 정신나간 범죄자들이 쉽게 살 수 있는 총기와 소형 폭탄 펜넬. 다양한 무기를 유통시켜 누군가를 짓밟고 파괴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사악한 욕망덕분에 엄청난 수익을 올렸던 공모자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소통조차 불가능하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천사를 통해 지옥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선량하게 사는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거나 한 명 정도는 죽여도 상관없다고 믿었던 뒤틀린 범죄자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천사가 강림을 하건 말건 죄를 짓지 않고 양심에 지키는 삶을 당연하게 생각할텐데 범죄자들의 사고방법은 다른 걸까. 불행한 현실을 저주하는 것으로 모자라 무고한 이들까리 끌어들여 파괴하는 인간의 사악함은 타고난 것일까, 환경을 통해 학습된 것일까. 아니면 양쪽 다일까. 악마가 있기에 지옥이 존재하는 걸까, 지옥이 존재하기에 악마가 생겨난 것일까. 어째서 사람들은 두 명을 죽였을 때 즉각적으로 열렸던 화염 지옥이 한 명을 죽인 범죄자의 사후에 열리지 않으리라고 철썩 같이 믿는 걸까. 오히려 천사들로 인해 입증된 화염 지옥을 보고 죄를 지으면 죽어서 지독한 형벌로 오랫동안 고통받을지 모른다는 경각심을 느꼈어야 하지 않을까. 이목구비가 없는 천사들은 두 명 죽인 범죄자들에겐 즉결 심판을 내리되 한 명 죽인 범죄자를 용서해주겠다고 말하거나 행동으로 보여준 적이 없음에도 우매한 인간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었다. 선악의 저울은 분명하지만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신은 세상사에 관여하지 않으며 천국의 존재는 증명된 바 없으나 즉결 심판으로 열리는 화염 지옥만큼은 너무나 분명하게 존재했음에도 욕망을 추구했던 어리석은 범죄자들. 그 어리석음에 휘말려 살해당해야 했던 억울한 이들과 남겨진 이들의 슬픔이 씁쓸하기 그지 없었던 작품 <낙원은 탐정의 부재>. 전쟁과 살육 없이 평화로운 낙원에는 정의를 추구하는 탐정의 존재가 필요없겠지만 문명이 발달한 이후 단 한 번도 살인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인류에게 낙원은 아득히 멀고 지옥은 턱없이 가까웠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지상은 선악이 뒤엉켜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전쟁터이자 대다수 선량한 사람들과 소수의 사악한 사람들이 마지못해 공존하는 더럽혀진 낙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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